재킷 한 벌, 집 한 채…그저 모든 것이 ‘서도호 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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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팔십이그램 작성일 26-08-27 16:55본문
지하 전시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실크로 박음질한 집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성북동 한옥부터 세계 각지를 떠돌며 살았던 집들을 이어 붙였다. 여의도의 아파트를 최고로 치던 1970년대, 아버지인 한국화 거목 서세옥(1929~2020)은 조선의 마지막 대목장을 모셔다가 창덕궁 연경당을 본뜬 한옥을 지었다. 6년 동안 성북동 한옥이 올라가는 걸 지켜본 유년기가 서도호(64)의 오늘을 만들었다.
전시장 입구엔 그때의 나무토막을 주워다 깎은 개와 소, 물고기가 놓였다. 해양생물학자를 꿈꾸며 방과 후 활어장에 가 물고기를 보고 또 보던 소년이었다. 서울대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 시절 만든 친구 유재하, 봄여름가을겨울의 앨범 재킷, 미국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 유학 시절 자신이 살던 방 크기 그대로 옥양목으로 바느질해 만든 ‘516호/516호-I/516호-II’(1994~1995)도 나왔다. ‘서도호 월드’의 씨앗들이다.
서울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27일 ‘서도호’가 개막한다. 전시 주제도 따로 없이 그냥 ‘서도호’, 출발점부터 현재까지 서도호의 모든 것이다. 드로잉·조각·영상·설치 등 500여 점으로 집약한 서도호의 30여 년 예술 세계를 꽤 이른 시기부터 보여준다. 대학 시절 작품과 200여 점의 드로잉, 대형 설치작품 등은 국내 첫 공개다.
26일 미술관에서 만난 서도호는 “20대 후반에 한국을 떠났지만, 국내 관객들께 제 한국적인 맥락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다”며 “전시에 부제를 붙인다면, 회향(回向)”이라고 말했다. 중생을 해탈하게 하기 위해 자기가 수행해 얻은 공덕을 돌려준다는 불교 용어다. “본뜻과는 좀 다를 수 있지만, 관객분들이 제 작품에서 본인들의 인생을 생각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서도호의 집을 보는데, 왜 내 집이 생각나지, 왜 내 인생이 생각나지?’ 하고요.”
반투명한 흰 천 위에 그가 거쳐온 여러 집의 문손잡이와 콘센트, 스위치 등을 실제 높이와 위치까지 스캐닝해 바느질해 만든 뒤 중첩되게 배치한 ‘완벽한 집: 런던, 호셤, 뉴욕, 베를린, 프로비던스, 서울’(2024)이 그렇다. 내가 들어가 살기 전에 누군가가 살고 있었고, 내가 떠나면 또 다른 이가 와서 살 ‘집’이라는 공간이 서도호 개인의 기억을 넘어 보편적 감응을 준다. 지난해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개인전에서 많은 관객을 차분하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독신 시절 빈 방에 혼자 앉아 천으로 만들었던 집은 종이에 실로 그린 드로잉, 성북동 한옥 표면에 닥지를 붙인 탁본 작업으로 이어졌다. 손으로 더듬어 탁본해 전시장에 세운 종이 집 ‘러빙/러빙(Rubbing/Loving): 서울 집’(2013-2022)은 부모님에 대한 헌사다. 결혼해 자녀들을 키우면서 만든 ‘사랑의 기억’(2026)은 뉴욕 전시 때 어머니가 사준 재킷 안감에 온 가족의 옷에서 떼어낸 주머니를 덧대고 그 안에 저마다의 소중한 것들을 넣은 근작이다. “옷은 우리 몸을 감싸는 제일 작고 은밀한, 이동 가능한 공간이다. 그 개념을 발전시키면 건축”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옷에서 방·집·학교·사회·나라·우주로, 서도호의 예술은 제일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확장되어 간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성희 관장은 “이주와 집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개인의 기억과 정체성, 공동체와 사회, 우리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시켜 나간 서도호의 궤적을 한자리에서 살펴보며 관객들 각자의 기억을 불러내는 소중한 경험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2월 9일까지 열린 뒤 6월 일본 도쿄도현대미술관, 9월 홍콩 M+로 순회한다. 서도호는 내년 뉴욕과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도 개인전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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